<불건너 강구경> | 엄윤선 스페이스 엄 대표 ‘제목이 불건너 강구경 맞아요? 강건너 불구경을 잘못 쓰신 거 아네요?’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은 질문 가운데 하나. 직접 전시제목을 작명한 작가 자신조차도 ‘강건너 불구경’이라고 기재하는 습관성 오류를 저지르고 있으니 관객이 헷갈리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 부모님과 사회에서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쳐다보며 왜 저렇게 열심히 살까… 라고 의아해했는데,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고 보니 나 자신도 어느새 불처럼 뜨겁게 살고 있음을 깨달은 작가의 고백이 바로 <불건너 강구경> 이다.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의 중압감을 덜어내고 작품에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허현숙 작가 특유의 유머이자 언어유희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처음 허현숙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이게 어떤 장르인지 아리송해했다. 전시때마다 하루에도 몇번씩 ‘무슨 그림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고, 펜화라는 둥 어반스케치라는 둥 관객 맘대로 해석하는 걸 들으면 괜히 빈정이 상했다. 흑연, 연필이라는 재료의 편견 때문에 한국화라는 진지한 정체를 못알아보다니! 갤러리 대표는 관객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작품 설명에 최선을 다했다. 괜히 연필로 그렸다고 우습게 볼까봐 작품의 난이도와 가치를 강조했다. 관객을 설득하는데 작가의 수상경력은 큰 도움이 됐다. 공신력있는 데이터이니 말이다. 국공립미술관의 학예사들과 평론가들은 역시나 전문가였다. 왠만한 갤러리들보다 먼저 작품을 꿰뚫어봤다. 한국화를 왜 연필로 그리느냐는 공격적인 질문을 하면서도 공모 심사에서 작가를 당선시키는 결단을 놓치지 않았다. 그 덕택에 허현숙 작가는 왠만한 국공립 미술관과 레지던시, 공공기관의 공모를 두루 거쳤고 또래 작가들보다 눈에 띄게 아주 많은 상을 받았다. 올 한해에만 한국은행과 광주은행 선정작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우수전속제 작가로 뽑혔다. 작가의 말로는 설마 될까, 시도나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공모에 지원했다는데 흠… 작품이 상을 받는다는 것은 ‘예술성’과 ‘미술학적 가치’가 인정을 받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재현된 작가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한국의 재개발 시대를 반영하며 모두의 기록이자 공통된 역사가 된 의미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역사의 기록 - 혹시 이 진지한 키워드가 작품을 무겁게 만들지 않을까. 결코 아니다. 어린 시절 자랐던 동네의 소실, 성인이 되어 집을 찾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부동산 과열, 그리고 지금 재건축의 열기를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그녀의 시각은 언제나 따뜻한 농담을 놓치지 않는다. 작품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인간미 충만한 유머와 위트 덕에 허현숙의 작품은 보는 사람들 누구든 공감하고 동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녀의 유머는 제목 선정부터 화면 전체에 이르기까지 쉽게 찾아진다. ‘우리가 있었다’와 ‘Once Upon a Town’ 연작에서 보여주는 라이프스타일 – 슬라브 지붕의 옛날주택에 기와가 날아가는 걸 방지하는 타이어, 물탱크, 집집마다 옥상이나 마당 일각에 놓여있던 커다란 고무대야, TV 안테나, 창 밖으로 나온 난로의 연통까지, 우리와 함께 했고 지금은 박물관의 기록사진에나 있을 법한 사물들을 고향인 ‘옛날 상계동’의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아 다시점(多視點)의 기법으로 재구성하며 화면에 빠져들게 끔 관심과 몰입을 유도한다. 지금과 비교하면 불편하고 촌스러운 삶이었는데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건 그 시간에 있었던 작가의 낙천성과 재치가 녹아있기 때문이리라. 작품명도 그렇다. 타워펠리스는 아니지만 내가 사는 그곳이 타워펠리스라며 지어진 ‘빌라펠리스’와 ‘타워빌라스’, 부동산 파동으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21년즈음, 갖고 싶은 집을 통째로 들어 옮기고 싶다며 지게차 카트 위에 그린 ‘섬-타운’, 간판이 잔뜩 달린 상가건물도 그 안의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처럼 뜨겁게 일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불 같은 전단집’까지, 사회 비판, 세대의 풍자로 오해받기 쉬운 현시대의 이슈를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은 한 개인의 일기이자 모두의 기록으로 만든 힘이 바로 허현숙의 유머다. 화면의 단단한 구성은 도시의 변화와 개인의 삶의 밀접한 관계를 더욱 힘있게 설득한다. 흑연으로 탄생한 이미지는 절제된 호흡에서 비롯된 중첩된 선, 농도와 질감의 섬세한 조정으로 탄탄한 밀도감을 보여준다. 거기에 장지의 질감과 흑연의 뭉침, 발림의 상호 반응인 물성 연구에도 박차를 가한 것은, 시대를 기록해 후세에 전달하고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겠다는 책임을 완벽하게 수행하려는 작가의 확고한 의지다. 이번 전시에서 ‘불건너 강구경 하듯’ 작품들을 바라보면 작가 개인사를 넘어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뜨겁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공감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열심과 노력의 결과가 무엇인진 알 순 없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 너머 강이 있다는 명제가, 옛 동네가 허물고 재건축이 끝나면 멋진 새단지가 세워지듯 미래의 언젠가 우리에게 강같은 평화가 올 것임을 암시한다.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 대한 응원임에 틀림없다.